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2008 베이징 올림픽 (문단 편집) == 대회 == [[2000년대]] 들어서 오랜만에 '''기인'''에 가까운 선수들이 제법 많이 나왔던 올림픽으로써, 숱한 명승부와 명장면들이 펼쳐진 대회였음은 부정할 수 없다. [[마이클 펠프스]]는 수영에서 무려 '''8관왕'''[* 200m 자유형, 100m 접영, 200m 접영, 200m 개인혼영, 400m 개인혼영, 4x100m 계영, 4x200m 계영, 4x100m 혼계영.]으로 마크 스피츠를 넘어 역사상 한 대회 최다 금메달리스트라는 기록을 세웠고[* 그는 자유형에서만 [[전신수영복]]을 입고 접영과 개인혼영에서는 반신 수영복을 입었다.] 육상에서는 [[우사인 볼트]]가 100m, 200m, 4×100m에서 3번 연속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미국 육상을 압도했다. 반대로 [[미국]] 육상계는 단거리 부분에서 남자나 여자나 모두 털리면서 제대로 망했다. [[장미란]]은 다른 선수들이 모두 메달을 가린 후에 혼자 역기를 들며 '''세계신기록'''을 경신하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하였다. * [[2008 베이징 올림픽/야구|야구]]에서는 [[김경문호/2008년|김경문호]]가 최종 예선을 뚫고 올림픽 참가했고, 불안한 시작과는 달리 남자 구기종목 최초로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또한 금메달뿐만 아니라 전승으로 우승한 기록을 세우게 되었는데 이것은 야구가 올림픽 종목으로 진입한 후 최초의 기록이었다. 결승전에서는 야구 최강국 [[쿠바]]를 상대로 마지막에 정대현이 극적인 더블플레이를 유도하여 최종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 [[펜싱]]에서는 여자 플뢰레 개인전에서 발렌티나 베찰리가 한국의 [[남현희]]를 상대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며 펜싱 역사상 유일하게 단일 종목 3연패를 기록한 유일한 선수가 되었다. 남자 사브르 개인전에서도 명승부가 나왔다. 결승전은 한국의 [[오은석]]을 이기고 올라간 니콜라 로페즈와 홈팀 중국의 중만간의 대결이었다. 초반에 먼저 8득점을 올리며 전반전을 리드로 끝낸 쪽은 로페즈였으나, 중만은 단 1점만 실점하고 무려 9득점을 올리며 15-9의 완승을 거두고 중국의 역대 2번째 올림픽 펜싱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첫 금메달은 이보다 24년 전에 여자 플뢰레 개인전에서 우승한 루안지제였다. 그러나 중만의 전성기는 [[대한민국]]이 남자 사브르에서 [[구본길]]을 발굴하면서 금세 끝났다.[* 그리고 2018년 현재, 아시아 남자 사브르는 [[한국]]의 절대적 우위 속에 [[이란]]이 2인자 위치를 굳히고 있다.] * [[2008 베이징 올림픽/축구(남자)|남자 축구]]의 경우 '''[[리오넬 메시]]'''가 출전해서 화제가 되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만나는 팀마다 죄다 승리를 거두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https://en.m.wikipedia.org/wiki/Football_at_the_2008_Summer_Olympics#Men|무시무시한 당시 아르헨티나 스쿼드]]를 처음 접한 축구 커뮤니티는 모두 '''"이 새키들 월드컵 나가냐?"'''며 경악. [[후안 로만 리켈메]], [[하비에르 마스체라노]], [[세르히오 아궤로]], [[앙헬 디마리아]], [[에세키엘 라베시]], [[리오넬 메시]] 등을 자랑했다. 참고로 아르헨티나는 결승전에서 나이지리아를 상대로 승리를 거둬 이전 대회에 이어 올림픽 본선 12연승을 기록했다. 이 올림픽 축구종목은 [[앙헬 디 마리아]]라는 새로운 스타 플레이어를 발굴했다. 이 당시 [[아르헨티나]]의 무시무시한 기록을 보면 다음과 같다. 매경기 2실점 이상 기록하지 않았고 전승 금메달도 기록이지만 브라질을 일방적으로 이긴것이 압권이었다. * 조별리그 * VS 코트디부아르 2-1 승 * VS 호주 1-0 승 * VS 세르비아 2-0 승 * 8강 VS 네덜란드 2-1(연장) 승 * 4강 VS 브라질 3-0 승 * 결승 VS 나이지리아 1-0 승 특히 이 대회에서 세계적 스타인 메시가 금메달을 딴 이후 올림픽 축구는 2년 후에 있을 [[월드컵]] 전초전 성격을 띠게 되며 23세 미만이지만 세계적으로 이름을 널리 알린 선수들이 더 많이 나오게 된다. 특히 [[브라질]]은 월드컵 5회 우승에 빛나지만 올림픽 금메달이 없다보니 엄청난 투자를 감행하기도 한다. 그리고 4년뒤 결승에서 멕시코한테 져서 은메달을 차지하고 8년뒤 홈에서 드디어 우승한다. 이 대회 이후 올림픽 축구는 전력 상향평준화에 이어 [[FIFA 월드컵]], [[UEFA 유로]], [[코파 아메리카]] 못지않은 제 4의 메이저대회로 성장했다.[* 사실 축구계 트렌드가 어린 선수라도 능력만 검증되면 바로 바로 프로 데뷔를 시키는 것으로 바뀌었고 그만큼 어린 나이에도 괴물급 기량을 보유한 선수가 늘고, 그 결과로 예전에 비해 프로에서도 주전 선수인 경우에도 와일드 카드가 아니라 U-23 선수로 올림픽에 출전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리고 아무리 축구계에서 올림픽이 언더 타이틀 붙은 대회라고 해도 올림픽이라는 이름값이 어디가서 빠질 만한 대회가 아니므로 정말로 올림픽 메달을 원해서 출전을 감행하는 경우도 많이 늘어난 편.] 한편, 한국은 2004년 대회에서의 성과에 힘입어 조별리그 통과를 노렸으나 마지막 경기에서 온두라스만 간신히 이기며 조 3위로 짐을 쌌다.[* 첫 경기에서 카메룬을 상대로 동점골을 얻어맞아 1대 1로 비긴 것이 치명타였다.] 일본은 3전 전패로 광탈했다.[* 그리고 4년 뒤 두 팀은 [[카디프 대첩|카디프에서 만나게 된다.]]] 사상 첫 축구 메달을 노렸던 개최국 중국 역시 약체 뉴질랜드와 사이좋게 1무 2패를 거두고 골득실 차로 3위를 차지하면서 광탈.[* 그 1무마저도 뉴질랜드에게 0대 1로 끌려다니다가 경기 종료 직전에 동점골을 넣은 것이었다.] 처음으로 아시아 예선을 거쳐 올라온 호주도 1무 2패를 거두면서 아시아 팀이 전멸했고 그 중 한국이 유일하게 1승을 거뒀다.[* 단 북중미, 오세아니아 팀도 함께 전멸했다.] 참고로 이 대회의 축구는 20년 전인 [[1988 서울 올림픽]] 축구와 굉장히 겹치는 점이 많았다.[* 개최국이 C조에 배정받은 점, 개최국이 조 3위로 무승탈락했으며 조 4위와 같은 전적이지만 득실차가 앞서서 3위인 점, A조에 들어간 [[아시아]] 팀이 1무2패로 탈락한 점, 아시아 팀 중에서 딱 한 팀만 1승을 거둔 점, 유일하게 1승을 거둔 아시아 팀이 [[이탈리아]]-[[아프리카]]-[[북중미]]와 같은 조를 배정받았으며 아프리카와 무승부-이탈리아에게 패배-북중미에게 승리해서 결과가 1승1무1패 조 3위인 점(다만 경기 순서는 다르다.), 아시아 팀에게 패배한 북중미 팀이 3전 전패 조 4위에 최종 순위 꼴찌를 기록한 점, 아시아 팀과 북중미 팀이 전멸한 점(88년 당시 호주는 오세아니아 팀이었으며 조 2위로 8강 진출), 아프리카 팀이 A/B/D조에 배정받은 점, 아시아 팀 중에서 한 팀만 조 4위로 탈락한 점, 중국이 본선에 진출한 점, 아시아 팀에게 패배해서 조 꼴찌 및 최종 꼴찌를 기록한 북중미 팀이 중국과 수교를 맺지 않고 [[대만]]과 수교를 맺은 국가인 점] 여담으로 호나우지뉴 또한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하여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 [[양궁]]은 중국인들의 시민의식이 아직 갈 길이 얼마나 먼지 보여주었다. 특히 악천후 속에서 치러진 여자 개인전에서 중국의 [[장쥐안쥐안]]은 8강에서 주현정, 4강에서 윤옥희, 결승에서 [[박성현(양궁)|박성현]]마저 이겨 한국인 올킬을 달성했는데, 무식하고 개념 없는 중국 관중들은 장쥐안쥐안의 경기에서 한국 선수들이 조준할 때마다 [[호루라기]]를 불고 페트병까지 두드리며 경기를 방해했다.[* 14년 후 중국이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동계올림픽]]을 개최했는데, 쇼트트랙 선수 [[황대헌]]과 [[이준서(쇼트트랙)|이준서]], [[박장혁]]이 쇼트트랙 남자 1000m 준결승전에서 중국 관중들의 비매너 행위와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편파판정 논란|심판의 편파판정]]으로 탈락하고 말았다.]아무리 국내에서 이런 상황에 대비한 훈련을 했다고 하지만, 한발 한발 집중해서 쏘아도 10점에 들어갈까 말까인데 잡다한 소음이 들리니, 아무리 담이 큰 한국 선수들이라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이 대회 뒤 한국 양궁 대표팀은 전보다 훨씬 더 강도가 센 훈련을 강행했는데, 바로 소음하면 둘째가는 야구 경기장에서 야구 경기가 시작되기 전 훈련을 한 것. 물론 관중들에게는 조용히 하라는 제지는 하지 않았고, 야구팬들은 평소처럼 분위기를 띄우며 쿵짝쿵짝 엄청난 소음[* 양궁 선수들 입장에서는 소음이라고 볼 수 있다.]을 유발했고, 그 상황 속에서 귀도 안 막고 훈련했다고 한다. 하지만 중국은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이보다 더한 광적인 응원 클래스를 보여주었다.[* 중국이 어떤 나라인가. 전세계 모든 선수들도 두 손 발을 다 들 정도로 광적인 응원으로는 월드클래스급이자 세계 No.1에 속한다. 우리나라 사람들, 특히 연세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괜히 중국을 떼놈, 떼놈이라고 불리는 것도 이러한 이유 중에 하나다.] * 남자 [[역도]] 105kg 초과급에서는 수많은 이들의 예상을 뒤집고 [[독일]]의 마티아스 슈타이너가 용상 인상 도합 461kg을 들어올리며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여담이지만, 슈타이너의 금메달 기록은 [[애틀랜타 올림픽]] 남자 105kg+ 급 금메달리스트 안드레이 셰메르킨이 들어올린 457kg 다음으로 낮은 기록이다. 하지만 슈타이너는 도핑 대란이 일어나는 와중에도 편법 없이 금메달을 지켜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슈타이너는 2007년에 아내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며 선수 생활을 그만둘 위기에 처했지만, 마음을 다잡고 선수생활을 계속해 올림픽에 출전했다.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오스트리아]] 대표로 출전해 7위에 그쳤던 슈타이너는, 올림픽 전초전 격이었던 2008년 유럽선수권대회에서 아내의 조국인 독일을 대표로 출전해 은메달을 거머쥐며 가파른 상승세를 탔고, 결국 베이징 올림픽에서 자신의 기록을 갈아치우며 금메달을 거머쥐게 된다. 정작 본인은 워밍업을 하던 당시 용상과 인상 모두 실전에서만큼의 무게를 들어올리지 못했고, 러시아 선수의 컨디션이 좋아 자신이 금메달을 획득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고 한다. 그저 같은 날 독일이 트라이애슬론에서 깜짝 금메달을 획득한 것 정도가 자신에게는 큰 힘이었다고. 인상에서 4위에 그쳤던 슈타이너는 용상 마지막 시기에 10kg을 추가하는 승부수를 두었고, 기어코 그 무게를 들어올려 두 계단을 한번에 뛰어올라 1kg 차로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금메달이 확정된 직후 슈타이너는 바벨 위에 엎드려 오열했고, 시상식에서는 아내가 항상 곁에 있었음을 알리기 위해 '''세상을 떠난 아내의 사진을 금메달과 함께 들어보이며''' 미소를 지었다. 이 장면은 경기를 시청한 수많은 이들의 눈시울을 적셨고, 지금까지도 베이징 올림픽을 넘어 100년이 넘는 올림픽 역사상 가장 감동적인 장면 중 하나로 회자되곤 한다.[[https://youtu.be/lssO92BNsJc|마티아스 슈타이너의 회상]]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로 자신의 전 아내에게 작별인사를 고한 슈타이너는, 뉴스앵커를 만나 2010년 재혼한 후 [[2012 런던 올림픽]]까지 출전한 뒤 2013년 은퇴했다.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은퇴 후 40kg을 감량한지라 예전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웬 훈남이 인터뷰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 [[호주]]의 [[다이빙]] 선수 매슈 미첨이 [[커밍아웃]] 이후 최초로 금메달을 건 선수가 되어 화제가 되었다. 게다가 [[중국]]이 독주하는 다이빙 종목에서 딴 금메달이라 더욱더 화제가 되었다. 금메달 획득 이후 미첨은 호주의 국민영웅 중 한 명이 됐으며, [[성소수자]] 올림픽 선수들에게도 큰 용기를 준 선수로 귀감이 되고 있다. * [[태권도]] 남자 +80kg급 경기에서 불상사가 발생했다. 동메달 결정전에 출전한 쿠바의 '앙헬 마토스'가 경기 도중 발가락 부상을 당해 1분간의 치료 시간을 얻었다. 규정상 1분이 경과하면 주심에게 추가 시간을 요청할 수 있는데, 쿠바 코치진이 이를 모르고 추가 시간 요청 없이 치료를 계속하여 마토스에게 기권패가 선언되었다. 이에 격분한 마토스가 언제 발가락을 다쳤냐는 듯 일어서서 심판진에게 거칠게 항의했고, 스웨덴인 주심 '샤키르 첼바트'가 오른손을 들며 '''"청 승!"'''을 외치기가 무섭게 왼발로 첼바트 주심의 얼굴을 가격했다. 결국 세계태권도연맹은 마토스와 코치에게 [[영구제명]]과 동시에 올림픽 5위 기록을 말소하는 중징계를 내렸다. [[헤르초크 & 드 뫼롱]]이 [[중국]]의 건축가이자 영화 감독인 아이웨이웨이[* 근데 이 사람, 반체제 성향으로 [[중국공산당]]에게 단단히 찍힌 사람이다. 실제로 베이징 올림픽이 끝난 직후부터 꾸준히 중국공산당의 반인륜적 폭정에 대해 비판하는 발언을 해오다가, 2010년에 가택연금에 처해지기도 했다. [[중국 정부]]가 자국의 우월함을 과시하고자 세운 경기장의 설계자가, 이런 정부의 행태를 비판하는 사람이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와 공동으로 설계한 '새둥지' 주 경기장 등 걸작 [[건축]]들도 한몫 했다. 운영자체는 막장이었어도 볼 건 많았다고 해야되나. 이런 말 저런 말이 나왔지만 그래도 큰 사고는 없이 끝난 대회였다. 베이징 올림픽 종합 우승은 [[중국]]에 돌아갔다. 중국은 개최국의 이점으로 금 48개 은 22개 동 30개로 종합순위 1위에 랭크되며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대회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종합 메달에선 [[미국]]이 1위)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